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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즈 사강, 구글 사이트는 사강의 일생을 이렇게 요약 한다

로드365 2011. 6. 28. 01:20

구글 사이트는 사강의 일생을 이렇게 요약 한다.
1935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수아즈 사강은 실업가인 아버지를 둔 부르주아 출신이었다. 리옹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입학한 수녀원 중학교에서 3개월도 못 다니고 퇴학당했다. 지드의 소설을 읽고, 양가의 처녀로는 발 디딜 곳이 못 되는 카페를 출입하고,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며 재즈를 즐기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들개 같다고 탄식했다. 자크 프레베르의 시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 그곳에 그대로 계시옵소서 / 저희는 이 땅 위에 그대로 있겠습니다 / 이곳은 때로 이렇듯 아름다우니......" 하는 시구를 불경스럽게 읊조리고 다니던 반항적이고 조숙한 소녀였다.

처녀작 <슬픔이여 안녕>으로 대중으로부터 열광과 찬사와 동시에 혹독한 비난의 화살도 받았다. 말더듬이로 열등감이 심했다. 소설가이며 희곡 작가, 영화 감독(<파란 고사리>)으로 활약하고 있다. 밤새도록 글을 쓰고 아침 8시에야 일어난다고 한다. "작품은 시작이 힘들다. 잘 안 될 때는 다시 잘 써지는 순간을 무조건 기다린다. 매일 써야 한다면 사무실에서 매일 일하는 공무원이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태여 자유업을 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피드광이었던 그녀는 1957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한때 신부가 임종 미사도 하고 "사강, 교통사고로 즉사하다."라는 뉴스가 전 세계에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소생한 그녀는 3개월간의 병상 생활에서 죽음과 인생, 사랑에 대한 깊은 반성의 기회를 얻게 된다. 퇴원 후 20세 연상의 매력적인 사내를 만나 첫눈에 반해 곧장 결혼하지만, 그 남편을 소설 <어떤 미소>에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는 2년 만에 헤어졌다. 그로부터 2년 후 한때 패션모델을 한 적이 있는 젊은 미남 미국인과 재혼하여 아들까지 낳았지만, 역시 <신기한 구름>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별거했다. 그러나 이혼 후 다시 그와 동거 생활을 시작하여 7년을 함께 살았다.

이 생활도 종지부를 찍으면서 사강의 생활은 사막처럼 황폐해져 간다. 신경 쇠약, 노이로제, 수면제 과용, 정신병원 입원, 나날이 술로 지새우는 생활이 거듭되면서 도박장 출입이 잦아졌다. 집을 담보로 잡히고 도박 밑천을 마련하는가 하면, 하룻밤 새 몇억 원 상당의 인세를 날려버리곤 하다가 파산했다. 급기야 프랑스 도박장에는 5년간 출입 금지 선고를 받고 도버 해협을 건너 런던까지 도박 원정을 갔다. 결국, 빚더미 속에 묻히게 된다. 도박이야말로 일종의 정신적인 정열이라 했던 사강은 그렇게 많은 돈을 잃고도 돈이란 본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태연히 말했다. 그 모든 생활과 성격의 파탄은 그녀의 견딜 수 없는 고독이 빚어낸 부산물이라고 한다.

그런 무절제한 생활의 대가는 비참했다. 어느 날인가는 "이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비디오카세트를 하나 사고 싶지만 내겐 그 돈이 없다."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그런 폐인 지경에서 사강을 구원한 것은 아들 도니였다. 그녀는 세상에서 아들만이 자기를 비판할 권리가 있는 오직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재생을 결심했다. "나는 사람이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내 손에 거머쥐었다.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나는 인생을 즐겼다. 그렇게 오랫동안 인생을 즐겼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그녀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애당초 거짓말하는 것에 쾌감을 느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모르는 것은 쓸 수가 없다. 느끼지 못하는 것도 쓸 수가 없다. 체험하지 않은 일은 쓸 수가 없다."라고 말한다.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