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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시간도 예술이 된다


세계의 전설적인 뮤지션을 발굴해낸 독일의 음반 레이블 ECM의 전시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그런 면에 음악 전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음악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공간 안에 풀어냄으로써 음악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ECM의 잔향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게 했다. (2013-10-23)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은 페테르 노이서의 ‘콘스탄츠 호수’다. “자연의 소리야말로 가장 오래된 노래의 형태로 수많은 예술의 모델”이 되었다는 만프레드 아이허의 말처럼 이 작품은 마치 호수 앞에 앉아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한없이 밀려드는 물살에 비친 빛을 가만히 목도하는 순간,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다음으로는 ECM의 초기 명반을 모아 놓은 ‘새로운 시작’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청음 박스는 독특한 형태로도 눈길을 끌지만, 빛과 외부 소음으로부터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더욱 매력적이다. 주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자유롭게 이동해 가며 들을 수 있는 만큼, ECM의 초기 음악의 흐름이나 방향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일명 아티스트의 길이라고 불리는 키스 자렛의 앨범과 공연 실황을 담은 복도를 지나면, 곧이어 ‘ECM 라운지’가 눈에 들어온다. 편안한 쇼파에 등을 기대, ECM 아티스트의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음악에 대해 알든, 알지 못하든 음악을 듣는 그 순간에 집중할 수가 있게 된다. 쇼파 옆 벽면에는 ECM에서 발매한 앨범들이 연도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ECM의 역사와 볼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미지였다.


‘마음과 풍경’은 오랫동안 음악과 영상의 흔적이 남을 듯한 섹션이었다. ECM의 앨범 커버 디자인은 심플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커버 디자인에 대해 “음악을 향한 초대장”이라 부르며, 음악을 소개하는 역할로 국한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섹션에서는 음악과 커버, 다시 영상이 서로 조응하는 순간을 담아낸다.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두 개의 스크린 화면 위로 앨범 커버 이미지와 영상이 동시에 등장한다. 이와 함께 앨범의 음악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이번 섹션의 작업들은 음악이 이미지와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피면서, 음악이 어떻게 다른 예술과 만나 호흡하는지를 보여줬다.


80, 90년대만 해도 음악을 듣기 위한 공간인 음악 감상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음악 감상실은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음악을 듣기 위한 공간이다. 최근에는 어디에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다. ECM 전시실 안에 구현된 음악감상실은 음악이라는 무형의 언어이자 공기를 만나게 해준다. 스피커와 어두운 조명, 그리고 작은 쇼파에 기대앉아 있으면, 하나의 음악만이 다가오게 된다.


이렇듯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ECM의 음악을 경험하기 위해서 그에 따른 감상 공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ECM 음악의 일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가 열린 아라아트센터 내부는 이러한 전시를 구현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 지하 4층에서 지상 1층까지 이어지는 전시장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면 서로 다른 층위의 음악을 만나게 되고, 점차 음악이 퍼져 나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좋은 작품을 보면, 우리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집중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려 한다. 에서 우리는 자주 멈추게 된다. 이곳에서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을 듣고, 그 순간을 경험할 때 마주하게 되는 것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순간은, 마치 예술처럼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음악을 ‘시간 예술’이라고 한다. 음악을 듣는 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며, 그 시간 동안 다양한 감각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는 굉장히 개인적이며, 각각 느끼는 바가 다르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음악을 전시한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앨범 재킷을 소개하거나 음악을 연대기 순으로 배열하는 식의 전시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것만으로는 음악을 감상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의 전설적인 뮤지션을 발굴해낸 독일의 음반 레이블 ECM의 전시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그런 면에 음악 전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음악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공간 안에 풀어냄으로써 음악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ECM의 잔향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전시 흐름은 전시와 함께 영화제, 마스터 클래스 등 ECM 페스티벌로 확장되면서, ECM이 뮤지션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적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ECM이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이다. 키스 자렛, 팻 메서니, 얀 가바렉 등의 아티스트들은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ECM의 수장 만프레드 아이허는 다양한 음악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이를 소개해왔다.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전시 제목처럼 ECM 음악이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듣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ECM을 만나게 된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은 페테르 노이서의 ‘콘스탄츠 호수’다. “자연의 소리야말로 가장 오래된 노래의 형태로 수많은 예술의 모델”이 되었다는 만프레드 아이허의 말처럼 이 작품은 마치 호수 앞에 앉아 있는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한없이 밀려드는 물살에 비친 빛을 가만히 목도하는 순간,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다음으로는 ECM의 초기 명반을 모아 놓은 ‘새로운 시작’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청음 박스는 독특한 형태로도 눈길을 끌지만, 빛과 외부 소음으로부터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 더욱 매력적이다. 주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자유롭게 이동해 가며 들을 수 있는 만큼, ECM의 초기 음악의 흐름이나 방향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일명 아티스트의 길이라고 불리는 키스 자렛의 앨범과 공연 실황을 담은 복도를 지나면, 곧이어 ‘ECM 라운지’가 눈에 들어온다. 편안한 쇼파에 등을 기대, ECM 아티스트의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음악에 대해 알든, 알지 못하든 음악을 듣는 그 순간에 집중할 수가 있게 된다. 쇼파 옆 벽면에는 ECM에서 발매한 앨범들이 연도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ECM의 역사와 볼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미지였다.



‘마음과 풍경’은 오랫동안 음악과 영상의 흔적이 남을 듯한 섹션이었다. ECM의 앨범 커버 디자인은 심플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커버 디자인에 대해 “음악을 향한 초대장”이라 부르며, 음악을 소개하는 역할로 국한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섹션에서는 음악과 커버, 다시 영상이 서로 조응하는 순간을 담아낸다.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두 개의 스크린 화면 위로 앨범 커버 이미지와 영상이 동시에 등장한다. 이와 함께 앨범의 음악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이번 섹션의 작업들은 음악이 이미지와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피면서, 음악이 어떻게 다른 예술과 만나 호흡하는지를 보여줬다.


80, 90년대만 해도 음악을 듣기 위한 공간인 음악 감상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음악 감상실은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음악을 듣기 위한 공간이다. 최근에는 어디에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다. ECM 전시실 안에 구현된 음악감상실은 음악이라는 무형의 언어이자 공기를 만나게 해준다. 스피커와 어두운 조명, 그리고 작은 쇼파에 기대앉아 있으면, 하나의 음악만이 다가오게 된다.


이렇듯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ECM의 음악을 경험하기 위해서 그에 따른 감상 공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ECM 음악의 일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가 열린 아라아트센터 내부는 이러한 전시를 구현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 지하 4층에서 지상 1층까지 이어지는 전시장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면 서로 다른 층위의 음악을 만나게 되고, 점차 음악이 퍼져 나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좋은 작품을 보면, 우리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집중하고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려 한다. 에서 우리는 자주 멈추게 된다. 이곳에서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을 듣고, 그 순간을 경험할 때 마주하게 되는 것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순간은, 마치 예술처럼 다가올 것이다. 출처


 



ECM –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지하 4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여러 겹의 커튼이 쳐져 있다. 커튼을 열고 입구에 들어가니 테리예 립달, 폴 모션 그룹, 토마스 스탄코 등 ECM의 역사를 함께 해온 뮤지션들의 공연 포스터가 보인다. 홀 중간에는 키스 자렛 트리오를 예견케 한 앨범, ‘Tales of Another’, 팻 메시니의 대표작 ‘Offramp’ 등에 대한 리뷰를 담은 신문기사 등이 스크랩돼 있다. 그렇게 한 층 씩 올라갈 때마다 ECM의 시대별 음악들이 충실히 소개돼 있어 그 궤적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음악과 영상을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은 상당한 영감을 제공하기까지 했다.


지하 1층에 다다르니 ECM의 창립자 만프레드 아이허와 키스 자렛이 탁구를 치는 사진도 보인다. 그곳에서 만프레드 아이허를 직접 만났다. 8월30일 입국한 만프레드가 출국하기 하루 전날인 5일 약 한 시간가량 가진 인터뷰는 음악, 전시와는 또 다른 영감을 주는 듯했다. 그에게 직접 키스 자렛에게 앨범을 만들자고 편지를 썼던 이야기, 키스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유럽을 돌며 솔로콘서트 투어를 하다가 중국 음식점에 간 일화들을 직접 듣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만프레드 아이허는 인터뷰 말미에 ECM의 과거 음악들에 대해서만 물어보는 게 아쉽다며 지금도 ECM은 젊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하고 있고, 자신이 죽은 다음에라도 이들은 후대에 널리 알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70대 노구가 아닌 젊은이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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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약 일주일 간 한국에서 머무르며 기자회견, 음악 감상회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한국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만프레드 아이허: 한국에 대한 인상을 자세히 이야기하기엔 일주일이란 시간이 짧다. 전시장, 음악감상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매우 진지했고, 그들에게서 따뜻한 기운을 받아서 좋았다.


Q. 이곳 전시회장을 보면 여러 층에 걸쳐서 음반, 아트워크, 역사에 대한 정리가 잘 돼 있다. 둘러보니 마음에 드는가?


만프레드 아이허: 작년 말에 한국 큐레이터가 보여준 제안서를 보고 전시를 흔쾌히 승낙했다. 이번 전시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작년에 독일 뮌헨에서 ECM 전시회를 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서 이번 한국 전시를 결정하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런데 와서 둘러보니 독일 전시 때와 차별되는 독창적인 시각과 섬세한 노력들이 보여서 마음에 든다.


Q. ECM은 음악과 함께 앨범재킷 등 아트워크도 유명하다. 전시를 둘러보니 엔리코 라바와 스테파노 볼라니의 듀오 앨범 ‘The Third Man’의 앨범재킷에서 만프레드 아이허의 구두만 나온 앨범재킷, 그리고 온몸이 다 나온 원본재킷이 함께 있더라. 재킷에서 당신 모습은 왜 지웠나?


만프레드 아이허: 좀 역설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나는 재킷에 나오고 싶지 않았지만 앨범 제목이 ‘The Third Man’인만큼 두 사람 외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것, 즉 프로듀서의 위치를 보여주는 신발은 남겨놔도 될 것 같았다.


Q. ECM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문장은 만프레드 아이허가 본 글에서 따왔다고 들었다. 어떤 글인가?


만프레드 아이허: 그 문장은 캐나다의 한 매거진에서 키스 쟈렛의 ‘Facing You’ 앨범에 대해 앨런 옵스틴이라는 기자가 쓴 리뷰에서 가져온 말이다. 그 글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ECM의 모토로 쓰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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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ECM에서 나온 첫 앨범은 말 왈드론의 ‘Free At Last’로 알려져 있다. 이 첫 음반을 제작한 경위를 설명해 달라. 왜 말 왈드론이었나?


만프레드 아이허: 그 당시에 말 왈드론이 뮌헨에 살고 있었다. ‘도미사일’이란 재즈 클럽에서 트리오로 연주를 자주 했는데, 우리는 가끔 대화를 나눴다. 그는 아주 조용한 사람이었으며 훌륭한 체스 플레이어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빌리 홀리데이 시절의 초기 레코딩을 무척 좋아해서 녹음을 하자고 제안하게 됐다. 앨범의 제목 ‘Free At Last’은 본인이 결정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한 음반사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앨범 제목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Q. 초기작 중에는 칙 코리아의 ‘Return To Forever’, 존 애버크롬비의 ‘Gateway’ 등이 재즈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그 외에도 찰리 헤이든과 칼라 블레이가 중심이 된 ‘The Ballad Of The Fallen’(스페인내전에 영감을 받은 작품) 등 흥미로운 음악들이 많다. 이 앨범의 경우 돈 체리, 믹 구드릭, 폴 모션 등 미국 재즈 연주자들이 모였지만 유럽풍의 연주를 하고 있다.


만프레드 아이허: ‘The Ballad Of The Fallen’은 찰리 헤이든이 아이디어를 내고 칼라 블레이가 음악을 어레인지한 앨범이다. 전부 미국 연주자들이 연주를 했지만, 유럽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아, 녹음도 유럽에서 유럽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을 했으니 그런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ECM 초기에 그런 작품들이 많았다. 가령 샘 리버스와 앤소니 브랙스턴, 배리 알츄가 참여한 데이브 홀랜드의 앨범 ‘Conference of The Birds’의 경우 매우 클래시컬한 앨범이다. 정말 환상적인 앨범으로 다시 들어봐도 마치 바로 엊그제 녹음한 듯 신선한 결과물이다. 초기작 중에 진짜 완전한 유럽풍의 작품으로는 얀 가바렉의 ‘Afric Pepperbird’였고, 그것은 많은 영감을 준 앨범이다. 그 이후부터 북유럽, 노르웨이의 연주자들, 폴란드의 토마스 스탄코, 영국의 케니 윌러, 에반 파커 등 유럽 연주자들의 음악을 레코딩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 뒤 에그베르토 지스몬티, 찰리 헤이든, 얀 가바렉이 함께 한 ‘Magico’와 같이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는 작업들이 이어졌다. 세계의 음악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Q. ECM을 대중에게 알린 연주자로 팻 메시니와 키스 쟈렛을 꼽을 수 있다. 팻 메시니의 데뷔앨범 ‘Bright Size Life’가 ECM에서 나왔다.


만프레드 아이허: 게리 버튼 퀄텟의 멤버로 아주 어린 팻 메스니가 함께 유럽에 왔었다. 믹 구드릭, 스티브 스왈로우, 밥 모제스와 함께 녹음을 위해 슈투트가르트 녹음실에 왔을 때 만났다. 당시 나는 당시 기타리스트들의 협연 앨범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신인 기타리스트를 찾고 있었다. 당시 믹 구드릭과 함께 연주한 다른 두 명의 기타리스트의 연주도 좋았지만 팻 메시니의 연주가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다. 때문에 아예 그의 첫 번째 데뷔앨범 녹음을 제안했고 그는 무척 기뻐했다. 게리 버튼 퀄텟이 녹음을 한 슈투트가르트 녹음실에서 자코 패스토리우스, 밥 모제스를 데려다 트리오를 꾸려 ‘Bright Size Life’를 녹음하게 됐다.


Q. 팻 메시니 그룹의 ‘Offramp’는 상업적으로도 히트하고 당시로서 획기적인 사운드를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녹음할 때 본인이 프로듀서로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면?


만프레드 아이허: 아이디어가 없으면 특별한 소리, 음악도 없다. 우린 특별한 소리를 개발하려 했다. 팻 메시니의 피아니스트인 라일 메이스는 그 당시 싱클라비어에 심취해있었다. 그는 이 앨범에서 싱클라비어 소리를 처음 사용했다. 또한 스티브 라이히의 영향도 컸다. 나나 바스콘첼로스을 통해 브라질 음악의 영향도 많이 받았으며, ‘Au Lait’와 같은 곡에서는 밀톤 나시멘토의 영향이 크게 나타난다. 난 그 앨범의 소리를 무척 좋아했다. 팻 메시니는 각 곡마다 본인이 원하는 소리가 분명히 있었고 그것을 멜로우(mellow)하게 잘 잡아냈다. 뉴욕의 파워 스테이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는데 그 곳에 440㎑로 튜닝된 매우 따뜻한 소리를 내는 피아노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스튜디오 분위기가 정적이었고 부드럽고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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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키스 쟈렛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키스 쟈렛과 당신이 단둘이 차를 타고 유럽을 돌며 솔로 콘서트를 했던 것은 음악 팬들 사이에 전설과 같은 이야기로 내려져 온다. 어떻게 그런 투어를 할 생각을 했나? 조금 무리한 투어 아니었나?


만프레드 아이허: 나와 키스는 구식 ‘레노’ 자동차로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를 투어를 다녔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음식들을 먹었는데 굉장히 특이한 중국음식점에 갔던 기억이 난다. 함께 웃었던 다양한 사건 사고가 있었다. 키스 쟈렛은 대단한 이야기꾼이라서, 밤이면 음악에 대한 이런 저런 재밌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날 자동차를 타면 전날에 이야기했던 음악 테이프를 틀면서 운전을 했다. 어떻게 보면 당시 키스 쟈렛의 좋은 연주들은 그와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주고받은 기운에서 영향을 받았을 거다. 그런 여행을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다. 당시 재즈 솔로 피아니스트는 키스 쟈렛이 유일했고, 인기를 끌면서 엄청나게 공연을 불려 다녔다. 공연 일정이 너무 많이 잡히는 바람에 기나긴 투어가 돼버렸다. 유럽부터 일본의 히로시마, 나고야 동경까지 갔으니까. 중요한 것은 둘이서 정말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며 영감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Q. 만프레드 아이허는 듣는 능력, 듣는 예술에 대해 누누이 강조했다. 재즈 록·퓨전을 하던 마일스 데이비스의 팀에 있던 키스 자렛을 보고 어떻게 솔로 피아노 앨범 제작을 제안하게 됐나? 키스에게서 뭘 들은 것인가?


만프레드 아이허: 개인적으로 퓨전재즈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퓨전재즈를 한 것이 아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마일스 데이비스만의 음악을 한 것이다. 난 마일스 데이비스가 환상적인 공연을 많이 봤다. 데이브 홀랜드, 잭 디조넷, 칙 코리아, 웨인 쇼터와 함께 한 것을 봤는데 정말 최고였다. 난 ECM을 설립하기 전부터 키스 자렛이 연주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찰스 로이드와 함께 오슬로에서 연주하는 것을 보는 것을 봤고, 피아노 트리오로 연주하는 것도 봤다. 난 ECM을 설립하기 전부터 키스 자렛의 앨범을 제작해보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그에게 편지로 두 가지 제안을 했다. 하나는 잭 디조넷과 게리 피콕과 트리오를 하는 제안, 또 하나는 칙 코리아와 키스 자렛이 함께 피아노를 치고 게리 피콕, 데이브 홀랜드가 함께 하는 두 대의 피아노, 두 대의 베이스가 하는 퀄텟을 제안했다. 그런데 키스 자렛은 솔로 피아노를 하고 싶다고 답장을 했다. 그렇게 첫 번째 편지를 주고받고 몇 달 뒤에 우리는 만나게 된다. 키스 쟈렛은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뮌헨의 독일 박물관에 공연을 하러 왔고, 그 공연이 끝난 뒤 잉글리시 가든을 함께 거닐며 솔로 피아노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오슬로에 가서 ‘Facing You’를 녹음했다. 결과물이 너무 좋아서 곧바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직접 여기저기 라디오방송국에 전화를 해서 키스의 음악을 알렸는데 유럽 여러군데에서 공연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까지는 피아노가 중간에 곡을 끊지 않고 한 시간 넘게 솔로 연주를 하는 공연이 없었다. 이것은 마치 영화를 보여주듯이 관객과 교감을 쭈욱 이어가는 콘서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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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칙 코리아, 게리 버튼, 팻 메시니, 키스 쟈렛, 찰리 헤이든, 존 애버크롬비, 에그베르토 지스몽티 등 여러 훌륭한 아티스트들이 만프레드 아이허와 함께 작업했다. 그런데 이들이 ECM에 오면 기존에 하던 것과 다른 음악을 한다. 이유가 뭘까?


만프레드 아이허: 미스터리한 요소다. 프로듀서와 연주자가 만나서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 항상 연주자들과 많은 교감을 한다. 그들이 음악적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상업성이 아닌 오로지 음악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감을 하기에 좋은 결과물들이 나왔던 것 같다.


Q. 얀 가바렉은 “녹음하는 도중에 감을 잃을 때면 만프레드가 음악을 다시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어떻게 힘을 실어줬나?


만프레드 아이허: 얀 가바렉과 나는 예술에 대한 철학, 미감, 방향성이 같은 선상에 있었다. 프로듀서는 영화감독과 같은 것인데 언제나 인내심을 갖고 뮤지션의 음악을 잘 들을 줄도 알아야 하고, 그 사람 말도 잘 들을 줄 알아야 하며, 어떤 순간에는 이것을 멈추고 가는 길이 맞는 것인지 반문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여러 가지를 꾸준히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


Q. ECM이란 이름은 현재 음악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질만큼 존재감이 상당하다. 만프레드 아이허가 장인정신이 음악가들과 함께 쌓아올린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만프레드 아이허가 없는 ECM은 가능할까?


만프레드 아이허: 지난 약 45년간 ECM은 꾸준히 음악을 만들어왔다. 앞으로 반세기건, 한 세기건 계속 이어질 것이다. ECM의 음악, 방향성, 철학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것이 후손에게 이어지듯이 계속 살아있을 거라 믿는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인터뷰를 하게 되면 항상 과거의 뮤지션에 대해서 물어본다는 것이다. 물론 이해는 하지만 말이다. ECM은 지금도 새로운 세대를 이끌어갈 신인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끊임없이 제작하고 있다. 키스 쟈렛, 칙 코리아, 팻 메시니 등은 지금 현존하는 최고의 연주자들이 됐지만 70년대에는 그들 역시 커리어가 없는 신인들이었다. 지금 ECM에는 스테파노 볼라니, 닉 뷀시 등을 비롯해 새로운 기타리스트들, 젊은 연주자들이 등장해 그들의 음악세계를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과거의 연주자들의 음악을 통해 ECM이 생명력을 얻긴 했지만, 지금의 신인 연주자들에게도 주목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언젠가 내가 쓰러져서 음악을 더 이상 못 듣게 되고 마지막 테이크를 녹음하는 순간이 오겠지만, 지금 배양되는 젊은 ECM 연주자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음악을 펼쳐나갈 것이다.


-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 텐아시아(www.tenasia.co.kr)